드래곤볼부터 둘리까지: 90년대 만화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

# 추억이 살아 숨 쉬는 종이 위의 마법

90년대 만화는 그야말로 만화의 황금기였습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 하나면 무한정 콘텐츠가 쏟아지던 시대가 아니었죠. 그래서일까요? 당시의 만화책 한 권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아이들의 하루를 통째로 채우는 ‘이야기 우주’였습니다. 마트 앞 서점, 학교 앞 문방구, 또는 동네 대여점에서 빌려 본 그 만화책 한 권에는 꿈이 있었고, 땀이 있었고, 눈물이 있었습니다. 특히 ‘보물섬’, ‘아이큐 점프’, ‘윙크’, ‘나인틴’, ‘르네상스’ 같은 잡지를 손에 쥐고 들뜬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기억, 혹시 아직도 생생하지 않으신가요?

1990년대의 만화는 단지 ‘재미’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풍자, 인간 관계에 대한 통찰, 우정과 경쟁의 묘사까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장편 영화에 가까운 스토리들이 많았죠. <슬램덩크>를 읽고는 농구를 시작했고, <드래곤볼>을 보며 기를 모으는 흉내를 냈으며, <소년탐정 김전일>을 보며 추리의 묘미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당시에는 만화책이 담고 있는 교훈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지, 친구란 어떤 존재인지, 노력과 포기의 기로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이런 질문들 속에 자라는 감성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 잡지로 만화를 기다리던 그 설렘의 시간

지금이야 완결된 만화를 정주행하며 단숨에 끝낼 수 있지만, 90년대는 전혀 달랐습니다. 주간이나 격주간으로 나오는 만화 잡지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죠. 버스정류장 근처 신문 가판대에 서서, 서점 진열대 앞에서 “이번 화 나왔나?” 하며 두근거리던 그 감정, 생각만 해도 심장이 간질간질해지지 않으시나요? 그 작은 잡지 한 권이 세상을 바꾸는 마법의 책처럼 느껴졌습니다. 신간이 들어오면 친구들과 함께 돌려보고, 마음에 드는 장면은 따로 스크랩해두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만 그리는 ‘팬아트’ 노트까지 만들던 시절이었습니다.

게다가 90년대 만화는 단순히 일본 작품만이 강세였던 것이 아닙니다. 국내 작가들의 작품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발휘했죠. 김수정 작가의 <둘리>,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 박광수 작가의 <광수생각>, 이충호 작가의 <천랑열전> 등은 그 시대 청소년들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었습니다. 한국식 정서, 한국식 유머, 그리고 때론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까지 담겨 있어, 보는 재미뿐 아니라 생각할 거리도 많았던 시대였죠.

# 장르의 파편화, 그러나 공감은 하나로

1990년대 만화의 또 다른 매력은 장르가 정말 다양했다는 점입니다. 스포츠, 학원, 로맨스, 판타지, 호러, 역사물까지 없는 장르가 없었습니다. 누구는 <유리가면>을 읽으며 배우의 꿈을 키웠고, 누구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보며 프랑스 혁명을 처음 알았으며, 또 어떤 분은 <헌터X헌터>의 복잡한 구조에 빠져 세계관 분석까지 시작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화는 단순히 ‘아이들의 놀이’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와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렌즈였고, 감정의 깊이를 확장해주는 아주 탁월한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만화 속 등장인물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이름들 있으시죠? ‘손오공’, ‘하늘이’, ‘강백호’, ‘미사키 아오이’, ‘세이라’, ‘이누야샤’, ‘도미요’, ‘천랑’… 그들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마치 친구처럼 우리 삶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시험기간에 몰래 읽다 혼나던 기억, 책상 속에 숨겨놨다가 들킨 기억, 혹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애장판을 선물받았던 감동까지. 만화는 그 시절 우리 삶의 배경음악이자 일기장이었고, 가끔은 도피처이기도 했습니다.

# 추억은 남고, 세대는 바뀌어도

물론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종이 만화는 점점 줄고, 웹툰과 영상 중심의 콘텐츠가 대세입니다. 클릭 몇 번이면 볼 수 있고, 인공지능이 추천해주는 장르에 따라 취향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1990년대 만화가 준 감동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기다림’과 ‘공유’, 그리고 ‘상상력’이 가득했던 시대였기 때문일 겁니다.

그 시절의 만화는 단지 재미를 넘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었고,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달아 주었습니다. 지금의 디지털 세대에겐 다소 느리고 번거로운 방식일 수 있겠지만, 그 속에는 단단하고 진한 감정의 결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만화는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살고 있으며,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그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해 주는, 그런 마법의 문입니다.

# 결론: 다시 만화를 펴면, 그 시절 내가 있다

혹시 요즘, 하루가 너무 반복적으로 느껴지시진 않으신가요? 바쁜 일상에 치여 잠시 숨을 고르고 싶으시다면, 오래된 책장 어딘가에 숨겨진 만화책 한 권을 꺼내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 속에는 잊고 지낸 나의 열정, 나의 순수함,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때 그 만화를 다시 펼치면, 그 시절의 내가, 반가운 미소로 인사를 건네올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죠. “이 감정, 다시 느낄 수 있다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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