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부터 해운대까지 90년대 부산의 풍경과 감성

부산역에서 시작된 하루, 그리고 남포동 골목길의 추억

부산역부터 해운대까지 90년대 부산의 풍경과 감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아마 부산역 앞 광장일 것입니다. 당시의 부산역은 지금처럼 현대적이진 않았지만, 그곳에는 늘 사람 냄새가 가득했지요. 부산을 오가는 기차가 쉴 새 없이 들락거렸고, 역 앞에서 호객하던 여관 아저씨들, 어깨에 짐을 가득 짊어진 상인들, 바삐 움직이는 학생들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산역은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작은 도시 같았습니다. 그 부산역에서 조금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남포동은 90년대 부산의 진짜 심장이었지요. 국제시장, 깡통시장, 그리고 PIFF 거리의 전신이 되었던 극장가가 즐비했던 그곳은, 언제 가도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당시 남포동 골목은 단순한 상업지구가 아니라, 문화와 유행의 교차로였지요. 여학생들은 남포동 로데오 거리에서 최신 유행하는 청바지와 야상 점퍼를 입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고, 남학생들은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한 판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소박하지만, 그땐 모든 게 새롭고 설렜던 시절이었습니다.

해운대 바다의 진짜 매력은 여름 피서철이 아닌 평일 오후였지요

지금의 해운대는 고층 건물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핫플레이스로 유명하지만, 1990년대 해운대는 조금 달랐습니다. 당시에도 여름이면 해운대 백사장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진짜 해운대는 그런 피서철의 붐비는 바다가 아니라, 평일 오후 한산한 바닷가였습니다. 삼삼오오 친구들과 돗자리를 깔고 앉아 라면 하나 끓여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시간, 아무 계획 없이 걷다가 발길이 닿은 곳에서 한참을 바라보던 잔잔한 바다… 그런 해운대의 정취가 있었지요. 그 시절의 해운대에는 지금처럼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도, 반짝이는 고층 건물도 없었지만, 대신 사람들 얼굴엔 웃음이 많았고, 바람엔 여유가 실려 있었습니다. 해운대역 근처의 만화방에서 친구와 시간을 보내다가, 슬리퍼 끌고 백사장을 걸으며 쫀드기 하나 사먹던 그 기억. 여러분도 혹시 그런 추억이 있으신가요?

90년대 부산의 거리에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버스의 경적, 시장의 흥정, 그리고 트로트

부산은 언제나 시끄러운 도시였지만, 1990년대엔 그 ‘시끄러움’이 정겹고 따뜻했습니다. 버스기사님의 “뒤로 좀 갑시다!” 소리에 사람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옆 사람을 배려해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고, 자갈치시장에서는 생선 가격을 두고 상인과 손님 사이에 오가는 흥정 소리가 바다 냄새와 섞여 퍼져나갔습니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포장마차에서는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왔고, 누군가는 술기운에 맞춰 따라 부르기도 했지요. 그런 부산의 소리들은 그 시대만의 리듬이었습니다. 요즘은 이어폰을 끼고 조용히 거리를 걷는 시대가 되었지만, 90년대 부산에서는 귀를 막는다는 건 곧 도시의 감정을 차단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그 시절 부산은 ‘귀로 듣는 도시’였고,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때의 버스 소리나 시장의 웅성거림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어쩌면 그 소리들이 그 시절 우리 마음을 울리는 일종의 사운드트랙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네 앞 공터, 그곳이 우리의 놀이터이자 인생학교였습니다

90년대의 부산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꼭 하나쯤은 공터나 빈 운동장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나 주차장으로 바뀐 곳도 많지만, 당시엔 그곳이 바로 아이들의 천국이었지요. 아침부터 해 질 무렵까지, 누가 불러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몰입해서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딱지치기를 했던 그 시절. 여름이면 ‘얼음!’ 하고 소리치던 숨바꼭질, 겨울이면 김 빠진 공 하나로 끝까지 경기를 이어가던 축구 한 판. 장난감 없어도, 스마트폰 없어도, 우리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공터 한켠에는 늘 슈퍼가 있었지요. 100원짜리 동전 하나로 뽑기 한 번, 과자 하나, 가끔은 달고나도 만들던 그곳. 지금 생각하면 그 소박한 풍경 하나하나가, 우리의 감성 근육을 키운 토양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놀이터 대신 학원을 더 자주 찾고 있지만, 그 시절 우리는 길에서 인생을 배웠고, 골목에서 우정을 쌓았습니다.

부산의 바람, 그건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정서’였습니다

부산에는 항상 바람이 붑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1990년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의 바람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좀 더 느리고, 좀 더 따뜻하며, 때로는 위로처럼 가슴을 쓰다듬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가 널어놓은 빨래 사이를 통과해 골목을 돌아오는 바람, 밤늦게 시장 정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어깨를 스치는 바람, 그리고 첫사랑과 함께 걸었던 영도대교 위의 바람까지. 부산의 바람은 그저 찬 공기의 흐름이 아니라, 삶과 추억이 흘러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바닷바람이 불면 괜스레 마음이 먹먹해지고, 그 시절의 누군가가 떠오르곤 하지요. 눈앞엔 없지만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1990년대 부산이라는 시간의 향기가 그렇게 다시 돌아옵니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있는 90년대 부산

지금의 부산은 글로벌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휘황찬란한 마천루, 트렌디한 카페, 세련된 지하철역과 대형 쇼핑몰까지… 확실히 더 편리하고 세련된 도시가 되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1990년대의 부산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곳에는 사람의 체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게마다 인사 나누던 주인 아저씨와 이웃 간의 정도 있었고, 길거리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던 문화도 있었습니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정 많았던, 불편했지만 정겨웠던, 그 시절의 부산. 이제는 추억 속에 자리 잡았지만, 마음 한켠엔 여전히 그 바다, 그 골목, 그 바람이 머물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도 1990년대 부산은 그런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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